20200710 사사 입다의 잘못된 서원 (사사기 11장 1-40절)

신랑과 신부는 신성한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을 평생 사랑하기로 서약 합니다. 그렇게 부부가 된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다면, 이는 중대한 죄악 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고 우상숭배를 저지르는 것을 영적 간음으로 표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는 것과 같은 중대한 범죄행위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고 큰 고통을 겪도록 벌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기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스라엘은 더욱더 하나님을 멀리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사기 10장 6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섬기던 신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알들,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의 신들, 블레셋 사람의 신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무수히 많은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사 이스라엘 사람들을 암몬 사람들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그 결과 요단 동편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18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학대를 당하며 살아야 했고, 요단 서편에 있는 백성들 역시 암몬 자손에게 짓눌려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와 같이 날이 갈수록 암몬 자손의 학대로 인해 삶에 큰 고통이 찾아오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이방신을 섬김으로 인해 이러한 재앙이 찾아왔음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본래 사사기의 패턴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사를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섬기던 신들에게 가서 도와달라고 부르짖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상을 섬겨온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배신을 더 이상 너그럽게 봐주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거듭 반복해서 똑같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분노를 사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말고는 의지할 분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자신들이 섬기던 이방신들의 우상을 찍어버리고 불태워 버리고 제거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삶의 고통 가운데 그제서야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죠. 이스라엘이 이처럼 진심으로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 당하는 것을 슬퍼하시며 더 이상 그들을 내버려두실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배신과 죄악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한편으로는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고민하고 계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깊이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와중에 암몬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을 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이번에 암몬과의 전쟁에서 지면 모든 것이 끝 입니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상황 입니다. 더 암울한 것은 워낙 암몬 족속이 강하다 보니, 병사들을 지휘할 지도자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요단 동편 길르앗이란 도시의 장로들은 입다라는 사람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들은 입다에게 그가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자가 되어 암몬과 싸워 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길르앗 장로들이 찾아간 사사 ‘입다’ 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까지 앞에서 살펴본 사사기의 이야기들에서 하나님은 사사를 직접 택하시고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그들의 구원자를 택하고 세우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닥친 상황이 위급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한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컸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사기 11장 1절을 보면 입다에 대한 소개가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큰 용사’ 였습니다. 이 말은 군사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싸움에 능한 사람 입니다. 이러한 소개를 통해 입다가 암몬과 대항하여 싸울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자가 될 만한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이러한 큰 용사 ‘입다’가 그 동안 영웅적인 인물이 되지 못했는지, 그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성경은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입다는 그의 아버지 길르앗이 기생을 통해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생’이란 단어는 ‘창녀’를 의미합니다. 입다는 그의 아버지와 기생 사이에 난 ‘사생아’였던 것이죠. 그로 인해 길르앗이 낳은 다른 자식들은 입다를 미워하여 그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도록 쫓아내 버렸습니다. 입다는 자신을 미워하는 형제들을 피하여 ‘돕’이란 땅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입다의 주변에는 건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잡류’가 그에게로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잡류’라는 말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란 뜻 입니다. 주류에 어울리지는 못하던 사람들이 입다 주변에 모여든 것이죠. 입다는 쫓겨난 땅에서 용병들을 모으며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에게 암몬과의 전쟁에서 대장이 되어주기를 부탁 합니다. 그리고 만일 입다가 암몬과 싸워준다면 입다를 길르앗의 ‘장관’으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입다가 병사들을 지휘해준다면 최고지휘자 자리를 주겠다고 설득한 것이죠. 이와 같이 기생의 아들이고, 잡류와 교제하던 외톨이 입다를 찾아와 우두머리의 자리를 제안하는 것을 보면 이 당시 암몬과의 전쟁을 앞둔 길르앗의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입다는 이와 같은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고향 길르앗으로 돌아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입다는 먼저 암몬과의 전쟁에 앞서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전쟁의 명분을 따지게 했습니다. 암몬 왕은 이스라엘이 현재 살고 있는 땅은 원래 암몬의 땅이었는데 이스라엘이 출애굽 이후 점령한 것이라고 주장 했고, 그 땅을 다시 돌려주면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입다는 암몬의 침략이 정당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입다는 암몬 왕이 제시한 전쟁 명분에 대하여 잘못된 것 두 가지를 언급 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이 암몬 땅을 침략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여정을 보면 이들은 모압, 에돔, 암몬 땅은 들어가지 않았고 그들과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보다 빠르고 편하게 가려면 이들 땅을 통과하는 것이 맞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의 땅에 들어가지도 말고 그들과 싸우지도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입다의 주장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암몬 족속과 싸운 일도 그들의 땅을 빼앗은 일도 전혀 없었습니다. 둘째로, 현재 요단 동편 이스라엘이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은 암몬 자손의 땅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의 땅이었습니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싸워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요단 동편 지역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정당하게 점령한 땅입니다.
이와 같이 입다는 길르앗이 살고 있는 땅이 암몬 자손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논증했습니다. 암몬 왕은 입다의 말을 듣지 않았고 협상은 결렬 되었습니다. 곧바로 암몬과의 전쟁이 시작 됩니다. 사사기는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입다의 손에 넘겨주셨고, 입다가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암몬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함으로 입다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완벽한 승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앞서 이방신을 섬기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와 자비를 베푸신 것이죠.
그런데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을 치르기 전 하나님께 한 가지 서원을 했습니다. 사사기 11장 30-31절 말씀 입니다. “(삿 11: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게 붙이시면 (삿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대신에, 그가 승전하여 돌아가는 길에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하러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 제물로 태워 드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서약을 한 것이죠.
우리 하나님은 한 번도 이와 같이 사람을 번제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을 제사를 위한 제물로 바치는 것은 이방 종교에서 행해지던 것으로 하나님께서 강하게 질책하시고 금지하시던 행위 입니다. 따라서 사사기 저자는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 입다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이방신을 섬기는 문화에 익숙해졌고, 영적으로 타락했는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오늘 입다의 서원 이야기를 보고, ‘아무리 자신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이라도 하나님께 한 번 서원 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요 메시지는 ‘서원을 반드시 지켜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사기 저자는 입다의 잘못된 서원을 통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사 시대의 영적 타락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27장 2-8절 말씀을 보면, 입다가 한 것과 같은 잘못된 서원은 오히려 지키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 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원을 지키는 일이 오히려 더 큰 죄를 하나님께 짓는 것이 된다면, 그 서원은 이행할 것이 아니라 취소시키는 것이 하나님 보실 때 옳은 입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입다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 그의 외동딸이 가장 먼저 나오게 됩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추며 영접하였습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밝고 환한 모습으로 노래하며 춤추는 아름다운 입다의 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입다의 잘못된 서원이 일으킨 긴장을 극대화 하고 있습니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잘못된 서원에 의해 그녀는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입다의 딸은 그의 아버지가 드린 서원의 내용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순응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입다에게 자신이 처녀로서 죽게 될 것을 친구들과 애곡하기 위해 두 달의 말미를 달라고 부탁 합니다. 성경은 입다의 딸의 끔찍한 죽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39절에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입다의 경우 꼭 서원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죽여 제사를 드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 입니다. 율법은 잘못된 서원은 돌이키거나 조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다의 경우 서원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더 큰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서원을 이행하여 죄를 지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서원을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보실 때 더 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람을 신께 바치는 제물로 드리는 이방 문화에 익숙해 있던, 입다나 그의 딸이나 그 어느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러한 잘못된 서원을 막지 않았습니다. 사사기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변치 못하는 민족에게 찾아오는 비극과 재앙을 입다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로 사사기는 왕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만일 이 때 입다에게 무엇이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 깨닫게 해주는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버지의 잘못된 서원으로 입다의 딸이 죽어야 하는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면 이와 같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나, 실은 하나님을 반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25장 22절을 보면 다윗은 자신을 무시한 나발에게 화가 나서 그를 죽여버리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원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잘못된 맹세를 이행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입다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종 모세 혹은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주고,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입다가 자신의 무남독녀인 딸을 저렇게 죽이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했던 제사장과 레위인의 영적 타락에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힘써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익히고 삶에 적용하는 것만이 생명의 길 입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말씀을 왜곡시킵니다. ‘서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절대적 헌신’이란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나, 입다는 길르앗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이끌려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한 욕심의 도구로 서원제도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입다는 탐욕에 눈이 멀어 결국 자신의 딸을 직접 죽이는 비극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사기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백성의 영적 타락과 비극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의 가치를 좇아가면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시고 반드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고 살아간다면, 주님의 뜻을 알 수 없고, 결국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비극과 고통의 삶을 초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그 말씀을 적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사기 시대가 영적 암흑기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져버렸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입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배워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우리가 모든 우상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야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며, 주님의 말씀을 열심으로 배우며,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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