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5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신명기 5장 22-27절)

(신 5: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신 5: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
(신 5: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가 보았나이다
(신 5: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신 5:26) 무릇 육신을 가진 자가 우리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신 5: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시내산에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십계명을 말씀해 주시고 기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봅시다. 22절 말씀 입니다. “(신 5: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하나님은 불, 구름, 그리고 흑암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이 표현을 보고 있노라면, 불과 구름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머리 속으로 잘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흑암’가운데 나타나셨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흑암’이란 표현은 ‘짙은 구름’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진한 어두움’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나타나셨으나, 그 어떤 형상도 보이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그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화 할 수 없는 것이죠.
이어서 모세는 22절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외에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 전체를 다 일일이 말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종 모세를 통해서 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십계명’만큼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직접 그 계명을 말씀하시고 친히 두 돌판에 기록까지 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대목을 통해 십계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 앞에 나타나시고, 친히 그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그 내용을 돌판에 기록하셨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겠습니까?
때로는 어떤 분들은 십계명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이니까,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이 오래 보존 되도록 돌 판에 새겨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의 내용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지켜야 할 삶의 원칙이 바로 십계명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과 어둠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시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24-25절 말씀 입니다. ”(신 5: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가 보았나이다 (신 5: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직접 보고 들음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신기하죠? 이 세상 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고 싶다고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싶다고 간절하게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그의 음성을 직접 두 귀로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나아가 더 이상 자신들은 하나님의 현현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25절에는 하나님의 현현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려움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하고 질문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포가 담겨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시내산 위에 나타난 불은 성냥개비로 지핀 작은 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불은 마치 이스라엘을 태워 멸망시킬 것 같은 큰 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큰 불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땅이 흔들리는 지진을 경험 했습니다. 어찌 하나님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26절 말씀을 봅시다. “(신 5:26) 무릇 육신을 가진 자가 우리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두려움을 느낀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 않게 되기를 모세에게 구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들에게 그 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 했습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감당해 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27절 입니다. “(신 5: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보자로 세워 그를 통해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중보자 모세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도 중보자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중 누가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남을 죄인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제자들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합니까? 우리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 그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구주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 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배우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우리의 참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며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복된 언약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