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2 왼손잡이 사사 에훗 (사사기 3장 12-30절)


(삿 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삿 3: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삿 3: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
(삿 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삿 3:16) 에훗이 장이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삿 3: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삿 3:18)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삿 3: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가로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왕이 명하여 종용케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삿 3:20) 에훗이 왕의 앞으로 나아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가로되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삿 3:21)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삿 3: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삿 3: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삿 3: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삿 3: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삿 3:26) 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삿 3:27) 그가 이르러서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삿 3:28) 무리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서 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삿 3:29) 그 때에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삿 3: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하나의 독특한 표현으로 말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한 번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여기서 “또”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십시오. 지난 주 제가 사사기 전체는 하나의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패턴이 무엇입니까? [범죄, 징계, 회개, 구원, 망각]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사기 저자가 “또”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시작되는 사사기의 패턴이 12절부터 다시 한 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과연 어떤 악을 행했을까요? 하나님을 무시한 악 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긴 악 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살아간 악 입니다. 이에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을 사용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징계할 때 회초리를 들듯이, 하나님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사랑의 매로 선택하신 것이죠. 12절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이런 기록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 다스리는 민족신도 아니요, 팔레스타인 지역만 다스리는 지역신이 아닌, 온 세계 열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 민족의 왕 에글론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에 위해 그들을 강성케 하셨습니다. 또한 이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모압 왕 에글론의 세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13절을 보면 암몬 족속과 아말렉 자손들도 그의 군수 통치권 아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막강해진 모압 왕 에글론 이스라엘을 치고 13절에 나오는대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하게 됩니다. 여기서 ‘종려나무 성읍’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여리고’ 입니다. 여리고에는 종려나무가 많이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리고를 정복 했을까요? 여리고는 모압하고 아주 가깝습니다. 게다가 가나안 땅의 중심 도시인 예루살렘이나 벧엘로 가기 매우 편리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을 통해 전쟁의 판도가 바뀐 것처럼, 수도를 점령한 것이 아니어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가 있기 마련 입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바로 이 ‘여리고’가 바로 그러한 전략적 요충지 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도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여리고’부터 점령했었습니다. 여리고는 철옹성이자 풍요로운 도시이며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 입니다. 따라서 모압 왕 에글론이 연합군을 이끌고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를 점령했다는 것은 이들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승기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여리고를 빼앗겼다는 것은 사실상 가나안 땅 전체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강성해진 모압 왕 에글론의 세력에 굴복하고 무려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를 섬기게 됩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삿 3: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을 더 좋게 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신을 섬긴 징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기게’ 하셨던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징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이 복된 길이요,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고통 당하고 망하게 된다는 분명한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싫어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모압 왕 에글론을 섬겨야 했습니다.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농산물과 가축, 그리고 자녀들을 착취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따라갔던 지난날 지은 죄들을 회개했습니다.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모압 왕 에글론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15절 말씀을 봅시다. “(삿 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앞서 제가 오늘 본문은 “또”라는 단어로 시작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긴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처럼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른 미련한 이스라엘 백성이었으나, 이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또 다시 주님을 향해 부르짖자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한 구원자를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거듭된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또 다시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한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애 3: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애 3: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사람은 인내하는 것이 한계가 있고, 용서하는 것이 제한적이지만, 우리 주님의 자비와 긍휼은 한계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거듭 짓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언제라도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우리 하나님은 또 다시 넓은 품으로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다함 없는 사랑 입니다.
모압 왕 에글론의 압제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고통 당하는 주의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들을 구원할 자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에훗 입니다. 15절 말씀을 이어서 봅시다.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오늘 본문을 보니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가 소개 되는데 이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왼손잡이였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왼손잡이’란 표현에 대해서는 다양한 성경 해석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왼손잡이’가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사용된 ‘왼손잡이’가 ‘오른손이 묶인 자’란 뜻이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사 에훗이 오른손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성경에 기록된 ‘왼손잡이’라는 표현은 사사기 20장 16절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는데, 그 때는 베냐민 지파의 용사 700명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 때문 입니다. “(삿 20: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여기서 사사기 저자가 베냐민 지파를 대표하는 700명의 용사를 설명하며 그들이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고 했을리가 없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용된 ‘왼손잡이’라는 표현을 보고 에훗이 오른손에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보기 보다는, 그가 오른손보다 왼손을 더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해석 입니다.
사실 이 ‘왼손잡이’라는 표현을 해석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고대 시대에 번역했던 주변 지역의 자료들을 통해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있었고, 그 땅에서 태어난 2세들은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이 그리스어 성경을 우리는 70 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번역했다 하여 ‘칠십인역’이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는 ‘셉투아진타’라고 부릅니다. 현존하는 구약성경 번역판 중에 가장 오래된 판본 중 하나 입니다. 이 칠십인경을 보면 오늘 본문의 ‘왼손잡이’라는 단어가 ‘두 손이 모두 오른손인 사람’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왼손잡이’라는 것은 오르손이 불구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왼손을 오른손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왼손잡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오른손이 묶인 자’란 표현으로 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베냐민 지파는 전쟁에서 군사들이 돌팔매질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해 칼을 들어야 하는 오른손을 뒤로 묶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즉 에훗은 오른손이 불구이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기 보다는 남들이 오른손의 역량을 키울 때, 왼손도 갈고 닦아 오른손처럼 사용했던 준비된 자임을 보여줍니다.
자, 그럼 하나님은 이 왼손잡이 에훗을 어떻게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셨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압의 속국이 된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니 이 때 이스라엘 자손은 에훗에게 이 일을 맡겼습니다. 즉 에훗은 모압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사절단의 대표로 볼 수 있습니다. 에훗은 에글론을 만나러 가며 칼을 한 자루 자신의 몸에 숨겨가게 됩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3:16) 에훗이 장이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16절에 보니 칼의 길이가 장이 한 규빗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 끝까지 길이로 대략 45cm 정도의 길이 입니다. 양쪽에 날이 선, 이 짧은 칼을, 16절 다시 보세요. 에훗이 어디에 찼습니까? 왼편입니까? 오른편 입니까? 오른편 다리 옷 속에 찼습니다. 왜 성경은 이런 디테일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고대 사회에는 왕을 죽이려는 암살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왕을 알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 수색을 거쳐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손잡이고, 그 경우 칼을 빼기 쉽게 몸의 왼편에 칼을 차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팔레스타인 지역의 고대사회 그림이나 벽화를 보면 오른손잡이 군사들이 왼쪽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왼쪽에 칼을 차던 시대 배경 속에서, 에훗은 왼손잡이로 오른편에 칼을 숨겨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에 이런 작은 디테일한 요소까지 사용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7절에 처음으로 모압 왕 에글론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봅시다. “(삿 3: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사사기의 저자는 모압 왕 에글론을 ‘심히 비둔한 자’라고 소개 했습니다. 이는 포동포동하게 살이 찐 모습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비둔하다’ 는 히브리어로 ‘바리’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본래 이는 사람에게 사용되는 형용사가 아니라 곡물이나 동물을 표현할 때 쓰였습니다. 살찐 소 혹은 풍성하게 익은 곡식과 같은 표현에서 사용 됩니다. ‘바리’라는 이 단어가 사람에게 사용된 예는 오늘 본문 밖에 없습니다. ‘에글론’이란 이름은 ‘송아지’ 또는 ‘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사기의 저자가 모압 왕 에글론을 튼실한 소로 비유하며 조롱하는 의미로 이 ‘비둔하다’란 뜻을 가진 ‘바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쳤습니다. 돌아가던 길에 에훗은 자신과 함께 온 다른 사람들은 다 돌려보낸 뒤 발걸음을 돌려 에글론 왕을 찾아갔습니다. 19절 말씀을 봅시다. “ (삿 3: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가로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왕이 명하여 종용케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에훗은 왕에게 할말이 있어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9절에서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여기서 ‘은밀한 일’은 신적인 존재로부터 받은 비밀스러운 예언을 의미합니다. 당시 모압은 ‘그모스’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는데, 에훗의 이러한 말투는 마치 그가 그모스로부터 신탁을 받은 것이 있다는 리앙스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에훗의 솔깃한 말에 호기심을 보인 에글론 왕은 신탁을 듣기 위해 주변에 있던 신하들을 다 물러가게 했습니다. 신탁은 중요한 것이기에 비밀스러운 것이 새어나가서는 안 되기 때문 입니다.
이에 에훗은 홀로 남아 있는 에글론 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모압신인 그모스로부터 신탁을 받기를 기대했던 에글론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0절 입니다. “에훗이 가로되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에훗은 자신이 받은 신탁이 모압이 섬기는 그모스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선포 했습니다. 이 때 에글론 왕은 뭔가 상황이 한참 잘못되었음을 직감하며, 위기를 느끼고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 때 에훗은 오른편 다리에서 숨겨 두었던 45cm 정도 길이의 양날검을 꺼내어 왕의 몸을 찔렀습니다. 22절을 보면 에훗이 찌른 칼의 칼자루도 날을 따라 에글론 왕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둔하고 살찐 적을 칼로 찔러서 칼날이 등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그가 온 힘을 다해 용맹하게 일을 처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에훗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고 확실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2절을 보시면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무엇일까요? 기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파르쉐도나’는 본래 ‘대변’이나 ‘대장의 찌꺼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에훗이 찌른 칼에 에글론의 대장이 뚫린 것이죠. 그 결과 상처를 통해 대장 안의 내용물이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방 안에 대변 냄새가 퍼졌고, 모압 병사들은 문이 잠긴 것을 보고도 왕이 용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에훗은 얼른 자리를 빠져나와 다락문을 닫고 잠갔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뒤에도 에글론 왕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린 모압 병사들은 열쇠를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으나, 이미 그들의 왕은 죽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모압 병사들이 자신들의 왕이 죽은 지도 모르고 기다리는 동안, 에훗은 충분히 도망칠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 후 에브라임 산지에 도착한 그는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자손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수 모압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다고 선포했습니다. 에훗 아래 모인 이스라엘은 용기를 내어 모압과 싸웠습니다. 왕을 잃어버린 모압 병사들은 죽음을 피해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나루를 지키고 모압 군사들이 한 사람도 강을 건너 도망가지 못하게 길을 막았습니다. 그 결과 모압 사람들은 아무도 강을 건너지 못했고 무려 일만 명 정도되는 군사들이 다 이스라엘 손에 의해 죽게 되었습니다. 29절을 보니 죽은 자들이 ‘다 역사요 용사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들 역시 살찐 자들이란 의미인데, 지난 18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수탈하여 배불렀던 원수 모압 군사들이 죽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에훗이 용기를 내어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의 수장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했습니다. 그 결과 그 날 여태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모압 사람들이 이제는 반대로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땅에 80년 동안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사기를 통틀어 가장 긴 평화의 시간 입니다.
에훗은 왼손잡이라는 자신의 특징을 이용해 전략을 세우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원수 모압의 수장을 무찔렀습니다. 이 모든 것은 15절 말씀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에훗을 그들을 위한 구원자로 세우신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에훗이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에훗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훗의 손에 모압 왕 에글론을 넘겨 주셨고, 이스라엘의 손에 모압 군사들을 넘겨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찾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또 한 번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사기는 계속해서 우리가 하나님 섬기기를 거절하고 세상의 다른 것들을 섬기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을 무시하며 살아간다면 매우 고통스러운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헛된 우상에 마음 뺏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또 다시 죄를 지은 이스라엘이었으나,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주님은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 다시 구원해 주셨습니다. 혹시 우리들이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과 같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언제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삶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망가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에훗이란 한 구원자를 세우셨듯이,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에훗이 원수의 적장 에글론을 찔러 이긴 것과 같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권세를 꺾으시고, 사망의 권세마저 굴복시키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놀라운 구원자가 계시기에 언제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미련한 이스라엘처럼 또 다시 여호와 목전에서 죄를 짓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김으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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