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5 옷니엘,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시다 (사사기 3장 7-11절)

(삿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삿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삿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삿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삿 3:11) 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오늘부터 우리는 사사기를 살펴볼 것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인도하고 통치했습니다. 이에 비해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은 자신들의 출신 지역이나 그와 관련된 지파만을 인도 했습니다. 사사 시대 역사를 살펴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싸이클(cycle)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범죄, 징계, 회개, 구원, 망각’의 싸이클이 계속 반복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범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 징계를 내리십니다. 징계 중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사사를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망각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범죄, 징계, 회개, 구원, 망각의 싸이클이 시작 됩니다. 사사기는 다양한 인물들과 스토리가 기록되어 있지만, 실상 앞서 말씀드린 구조가 거듭 반복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범죄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짧은 다섯 구절 속에서도 싸이클이 반복 됩니다. 먼저 이 싸이클의 첫번째 요소인 이스라엘이 ‘범죄’하는 장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다’고 기록 했습니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지 완전히 ‘망각했다’거나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가나안 우상도 섬김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신앙을 잊어버리 것 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다른 이방신을 함께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또한 이러한 혼합적인 신앙생활을 자신을 잊어버린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고 말씀 하시며 우리 인간은 본성상 두 가지 신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겉으로는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들도 섬기는 것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실상 하나님 보실 때 그러한 신앙생활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7절 말씀을 보니 이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섬긴 이방신들의 정체가 등장합니다 바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입니다. 바알은 비와 농사를 관장하는 남신이고, 아세라는 출산과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으로 이 두 신은 부부사이라고 가나안 사람은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이 바알과 아세라가 둘 다 ‘바알들’, ‘아세라들’ 이렇게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우상을 주로 나무를 깎아 만들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나무 바알과, 나무 아세라를 자신들의 삶 가운데 가지고 왔는지 보여주는 대목 입니다. 그래서 많은 나무 우상들을 표현하기 위해 바알과 아세라를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기록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찌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이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이방신을 섬기게 되었을까요? 그것도 나무를 깎아 만든 이 허무한 존재를 말입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이 두 신이 관장한다고 믿어져 왔던 영역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알은 비와 농사를 과장하는 신 입니다. 농경사회였던 고대사회에서 제 때 비가 내리는 것과 가을에 풍작을 얻는 것은 큰 복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비가 내리지 않으면 불안해 했고, 혹시 한해의 농사를 망치진 않을까 염려 했습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을 따라 집에 나무를 깎아 만든 바알 우상들을 들이게 된 것입니다. 또한 고대 사회에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복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여인이 자녀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신의 저주요, 신께 버림받은 자라고 여김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창세기에서 야곱의 두 아내가 경쟁하듯 자식을 낳는 장면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산과 풍요를 관장하는 아세라 우상을 집 안으로 들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라는 가나안 족속이 섬기던 이방신을 섬기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삶의 염려와 두려움 그리고 욕심 때문 입니다. 농사를 망칠까, 비가 안 내릴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 그리고 더 잘 살고, 더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또한 해변의 모래와 같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크게 번성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부분을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풍요로운 삶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결국 자신들이 스스로 살 방법을 찾겠다는 심정으로 이방신들을 섬기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우상을 섬긴 범죄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잘 이야기 했습니다. “(렘 2:11)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렘 2:12)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실로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 되시는 주님을 버리고, 스스로 마실 물을 찾겠다고 아무런 물도 저축하지 못하는 쓸모 없는 터진 웅덩이 같은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범죄 입니다.

2. 하나님의 징계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는 모습을 마치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간음하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남편에게는 얼마나 큰 분노로 다가오겠습니까?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여기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란 표현을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여호와의 얼굴이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뜨거워졌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화가 난 사람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듯이,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뜨거운 불처럼 타오르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메소보다미아의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구산 리사다임’이란 이름은 ‘범죄를 많이 저지른 구산’이란 뜻입니다. 이 왕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암시하는 이름 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성품이 거칠고 폭력적인 왕, 사람을 동물취급하는 왕 ‘구산’에게 점령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구산 리사다임 왕을 섬긴 기간이 무려 8년이나 됩니다.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따금씩 뉴스를 통해 한국 군대에서 일어나는 총기사건을 TV로 보게 됩니다. 대부분 기사를 읽어보면 계급이 낮은 병사가 자기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던 선임병들의 욕설, 인격모독, 구타를 참지 못하고 총으로 상대편을 쏴 죽인 이야기들 입니다. 요즘에는 군생활이 3년도 채 안 됩니다. 그 기간만 지나면 전역하고 사회로 복귀합니다. 날 괴롭히던 선임병을 두 번 다시 볼일이 없으니 눈 딱 감고 3년만 참으면 되는 거죠. 그런데도 괴롭힘 당하는 병사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총기를 난사한 것입니다. 하물며 8년이란 긴 세월 동안, 범죄를 많이 저지른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악한 왕 ‘구산’ 밑에서 지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고통과 그들이 받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얼마나 컷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힘들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던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죄 때문이었습니다. 7절 말씀 마지막 단어가 뭐죠? ‘섬긴지라’ 입니다. 8절의 마지막 단어도 ‘섬겼더니’ 입니다. 이 둘은 같은 단어 입니다. 사사기의 저자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죄의 결과로 임한 형벌이 바로 구산 왕을 섬기게 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림으로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3. 이스라엘의 회개
구산 왕을 섬긴 지 8년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극한 괴로움과 압제 속에서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9절 입니다. “(삿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고 할 때 사용된 ‘부르짖다’는 표현은 ‘울부짖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산 왕의 폭정에 너무 힘들고 지쳐 견딜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고 하나님께 두 손을 싹싹 빌며 ‘제발 좀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외침을 보여줍니다.
자,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만일 하나님께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악한 구산 왕에게 넘기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 했을까요? 바알과 아세라 섬긴 것이 잘못이라 것을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다면, 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리 도망치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줄 또 다른 우상들을 찾아 떠나갔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케 만들었고, 다시금 주님 앞으로 나오도록 마음을 낮추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징계’가 가진 역할 입니다.
나쁜 길로 가려고 하는 자녀에게 회초리를 드는 부모의 마음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 된 길로 가지 않도록 징계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도 하나님의 징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유혹을 따라가면 우리 영혼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회초리를 드십니다. 때로는 본문의 내용처럼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괴롭게 하시고, 때로는 괴로운 상황을 우리 삶에 허락하셔서 우리 마음을 낮추시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죄를 회개하게 하십니다. 징계를 당할 때는 너무 마음이 힘들고 무겁지만, 돌아보면 그 징계야말로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증표’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어린시절에는 부모의 회초리가 싫지만, 크고 나서 그 회초리가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했음을 깨닫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를 통해 성인이 된 자녀는 자신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위한 ‘사랑의 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 받는 자가 오히려 복된 사람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죄를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이들은 고통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4. 하나님의 구원
성경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이런 죄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한 때 자기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들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9절 말씀처럼 ‘한 구원자’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난 8년 동안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계속해서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부르짖음을 듣자, 곧 구원자를 일으켜 세우신 것이죠. 마치 신약성경에서 가족을 버리고 외지에서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 것과 같이, 주님은 주의 백성이 회개하고 돌이켜 오면 즉시 그들의 삶을 안아 주시고 또 다시 회복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찬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입니다.
겉으로 보면 옷니엘이란 사람이 일어나 사악한 구산 왕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9절 말씀을 보면 이 모든 역사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 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의 사역자를 통해 큰 복과 은혜를 누린다 할지라도, 결국 그 사람을 세우신 하나님이야말로 주의 백성이 받은 복과 은혜의 수여자이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신 분은 옷니엘을 사사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일하실 때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테니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라는 생각으로 방관적이고 나태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늘 사람을 통하여 주의 선한 계획을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범죄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회복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주를 향하여 부르짖는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지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를 용서하시고 징계를 끝내시고, 큰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니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이나 지속되었다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죄를 지어 고통 받은 8년에 비하면 40년의 기간은 무려 5배나 더 깁니다. 다윗은 그의 시 30편 5절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 30: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가 죄를 지어 받는 징계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은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빨리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일수록 더 빨리 용서받고, 더 긴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늘 주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이란 긴 기간 동안 태평을 누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외적의 침략도 압제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버리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입니다.

5. 이스라엘의 망각
자,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억이 나빠서 일까요? 이들은 지난 날 범죄하여 받은 하나님의 징계주심을ㅋ잊어버리고 또 다시 하나님께 범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삿 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것이 사사기의 싸이클 입니다. 그리고 사사기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죄를 지으면 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사사기를 읽다 보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이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잊어버리는가?”, “그렇게 하나님의 징계로 심한 고생을 하고도 또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사사기를 읽다 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 다시 사사기를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가 바로 제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혹 사사기의 반복되는 싸이클이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닙니까? 혹 지금 하나님의 징계 아래 계신 분은 없습니까? 빨리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십시오. 그것만이 징계를 끝내는 가장 빠른 길 입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 하나님은 언제라도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주의 백성을 구원해 주시고 큰 은총도 함께 주십니다. 우리가 이 좋으신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범죄의 도구’가 아니라, 옷니엘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고 구원하는 ‘회복의 도구’로 쓰임 받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이 닫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