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0] (전체예배영상) 성경인물 시리즈 베드로 (2) “베드로, 제자로 부름받다” (마태복음 4장 19-20절)

‘여행’이란 두 글자는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 삶에 신선한 경험을 가져다 줍니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짐을 싸야 합니다. 집에 있는 것들이 좋고 편해도 여행을 갈 때 다 싸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거실의 소파가 아무리 편해도 가지고 갈 수 없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먹고 싶어도 일일이 다 싸갈 수는 없습니다. 사실 여행을 떠나며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가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 입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일수록 가방에 넣어야 할 것과 빼야 할 것을 잘 구분할 줄 압니다. 여행 하수일수록 필요 없는 물건들, 무거운 물건들, 현지에서 쉽게 대체 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방에 넣습니다. 그러나 여행 고수일수록 가방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달라집니다. 꼭 필요한 것들,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척척 골라내어 가방에 넣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행 하수이십니까? 아니면 여행 고수 이십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속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나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신 예수님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경험해 본적 없는 여행이 될 것 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여행을 어떻게 준비 했을까요?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 모두도 예수님 따라가는 여행 중인 사람들 입니다. 혹 이제 막 이 예수님과의 여행을 떠나려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 속에서 가장 귀한 여행이 바로 예수님과의 여행 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이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잘 준비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고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예수를 위해 버려두다.
먼저 본문 마태복음 4장 19-2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마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 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나를 따라 오너라”는 예수님의 초청에 베드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손에 잡고 있던 ‘그물’을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들고 갈 수 없듯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버려두고 가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을 향한 나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심,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심, 나의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욕심, 성공하고 싶은 욕심을 다 버려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그의 욕심을 버렸다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그물을 버리지 못했다면 그는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고 손에 붙들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손에 붙들고 싶은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군대에 입대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신병들의 소지품 검사 입니다. 사회인으로서 가지고 있어도 아무 상관 없지만 군인으로서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는 물품들이 있습니다. 보니까 별걸 다 가지고 오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군 입대하는데 향수도 가지고 오고, 책도 가지고 오고, 과자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고 다양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군생활에 필요하고 있으면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을 다 가지고 오는 거죠. 그러나 소지품 검사 때 이런 것들 다 집으로 돌려 보냅니다. 심지어 그가 입대할 때 입고 온 옷과 신발, 속옷까지도 박스에 쌓아서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한 장과 함께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일반 시민으로서는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군인으로서 생활하려면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분명 있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가장 먼저 버려야할 것들을 확실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로마서 8장 5-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세상 욕심을 품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도 살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육신을 위해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장 먼저 이 세상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한 번 이 시간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현재 내가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는, 내 두 손에서 놓지 못하고 꽉 붙들고 있는 그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먼저 놓는 연습을 하십시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 어머니가 자기 어린 아들을 데리고 마트에 갔어요. 마침 아들이 가지고 싶던 로보트 장난감이 있는 거에요.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에게 무엇을 사줄까 고민하던 터라 “그래 너 갖고 싶은 거 하나 사”하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너무 싱글벙글 웃으며 로보트가 들어 있는 자기 몸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박스를 들었습니다. 장을 다 본 어머니가 계산을 하기 위해서 아들과 줄을 섰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 차례가 다 되어서 카트에 실린 물건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계산해야 되니까 로보트 박스 잠깐 계산대에 올려 놓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아주 어린 아들은 엄마가 마트에서 밖으로 나갈 때 되니까, 자기한태서 이제 로보트 장난감을 뺏는 줄 알고 그 박스를 안 주는 거에요. 막 안된다고 소리치고 울구불구 난리가 났어요. 엄마 생각은 그거 잠깐 주면 계산하고 다시 주겠다는 건데 아들은 나이가 어리니까 그런 개념이 없는 거죠. 엄마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어린 아이들만 그런게 아니고요. 우리들도 그럴 때가 있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작은 것이 아니에요. 주님은 우리에게 온 우주 전부를 주시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던져 주셨어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것이에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날에 주와 함께 영원토록 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받은 사람들 입니다. 그런 대단한 권세를 소유한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지금 손에 붙들고 있는 그 장난감 내려놓으라고 하시는데, 그게 안 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면, 마치 ‘엄마가 내 장난감 빼앗으려고 하나보다’하고 생각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울구불구 소리치는 어린 아들처럼, ‘이거 없이는 못산다’고 하나님께 떼쓰며 두 손으로 세상의 장난감들을 움켜쥘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계산대 위에다가 로보트 장난감 내려놓지 않으면 마트 밖을 나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나가는 거에요. 아이가 고집부리고 계속 그렇게 엄마 안주면 지금은 자기 품에 품고 있는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자기 것이 되지 않는 것이죠. 똑똑한 아이는 어떻게 해요? ‘아, 내가 이거 잠시 엄마 주면 조금 이따가 이게 다시 내 것이 되는 것이지.” 이걸 아는 아이가 똑똑한 아이죠.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장난감 내려놓지 않은 아이가 마트 밖을 나갈 수 없었던 것처럼, 세상 것 가지고 하나님 나라 향하여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가지고는 예수님 따라 갈 수 없어요. 정말 지혜로운 성도는 내가 예수 믿기 전에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던 것 주님 앞에 내려놓는 사람입니다. 왜요? 주님께 드리면 그거보다 더 큰 기쁨이 있거든요. 주님 따라가면 결국 내가 내려놓은 그것도 내 것이 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이 놀라운 진리를 말해줍니다. 이 세상 것들을 위해 살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이 보실 때 의로운 길을 추구하며 살라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세상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 따라가라는 거에요. 그러면 놀랍게도 내가 예수님 위해서 희생하고 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신다는 거죠. 이게 복음의 놀라운 신비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고 손해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거에요. 왜요? 우리가 주님을 위해 치른 희생과 대가를 우리 주님께서 다 갚아 주십니다. 마태복음 16장 24-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 하셨어요. 주님을 따르려면 가장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쉬운 말로 바꾸면, 이 세상을 향한 욕심을 버리라는 거에요. 내 손에 붙잡고 있는 세상 그물을 내려놓으라는 거에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예수를 따라가는 이유가 내 자신의 성공, 부와 명예, 건강, 장수, 자녀의 축복… 이런 것들을 위해서 예수 믿고 계신 분들도 많을 거에요.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초보 단계 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신앙생활 제대로 시작한 것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을 각오하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어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어요.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 욕심 다 내려놓고 죽을 각오하고 따라오라는 거에요.
우리는 신앙생활하며 자꾸만 무언가 막 하려고 합니다.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하고, 섬김도 하고… 그러나 ‘하는 것’ 보다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 입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결혼한지 한 20년 정도 되는 한 부부가 있어요. 애도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데, 남편이 딴 여자와 바람이 났어요. 아내가 너무 화가 나는 거에요.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나? 내가 그 동안 얼마나 가족들 위해서 희생하고 20년 동안 힘들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 놈의 남편 집에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제 끝이다.’ 그 날밤 남편이 집에 왔어요. 그런데 이게 웬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 손에 붉은 장미 꽃다발이 있어요. “여보,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오늘이 우리 결혼 20주년이야. 자기 사랑해” 이러면서 장미꽃과 함께 고급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박스를 하나 꺼내 주는 거에요. 아내가 그 순간 장미꽃과 그 박스를 바닥에 내던져 버렸어요. “이거 다 필요 없어.” 여러분 이 때 아내의 감정이 이해가 되십니까? 아내가 정말로 필요한 건 뭐에요? 사랑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다 드릴 수 있어요. 우리의 시간, 우리의 물질, 우리의 에너지 모든 것을 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은 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거에요. 사랑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 열 가지 해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그 사람이 싫어하는 그 한 두 가지를 안하는 것도 사랑이에요.
제 아내는 전기제품 쓰고 나면 plug를 웬만하면 다 뽑습니다. 새벽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핸드폰 충전되어 있으면 그거 플러그 뽑고 자요. 그런데 저는 반대에요. 전기제품 써도 플러그 웬만하면 다 그대로 꽂아 둡니다. 귀찮은 거죠. 근데 그런 제 모습이 아내에게 bother 가 되는 거에요.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냐면 아내가 싫어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처음에는 이게 잘 안 고쳐지더라고요. 사실 이해도 잘 안되었어요. ‘그거 플러그 벽에 꼽아 둔다고 전기세가 얼마나 더 나가나?’ 사실 지금도 이해는 잘 안가요. 그래도 뽑습니다. 왜요? Because I love her. 이렇게 하는 것이 저 사람의 기분과 마음을 좋게 해주니까. 사랑은 상대방에 좋아하는 것 열 가지 해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상대방이 정말 싫어하는 것들 내가 안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랑이에요.
여러분 예수님 사랑하시죠? 그럼 예수님이 싫어하는 것 버려야 합니다.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그물이 아무리 맘에 들어도, 정들었어도, 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난 너가 그거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으면 그거 버려야 합니다. 눈 딱 감고 버리세요. 어부인 베드로에게 그물은 먹고 사는 길이었어요. 그가 그물 내려놓는 것 쉬웠을까요? 어려웠을까요? 어려웠을 거에요. 베드로도 분명 고민 했을 거에요. “이거 놓아 될까? 이거 놓으면 우리 가족 다 굶어 죽는 거 아냐?” 그런데 베드로가 그거 놓고 굶어 죽었습니까? 아니에요. 그는 그물을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속에서 영원한 생명과 한 없는 기쁨을 발견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물을 내려놓은 베드로가 발견한 놀라운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예수를 좇아가다
자, 예수님과 떠나는 여행을 위해 베드로가 제일먼저 한 일은 뭐에요? 그물을 버렸습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했습니까? 예수님을 좇아갔습니다. 마태복음 4장 19-2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봅시다. “(마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 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여기서 핵심은 무엇을 좇아갔냐 입니다. 사람은 한 평생 무언가를 좇아가며 살아갑니다. 꿈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부를 좇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좇아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게으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사실 인생의 느긋함과 편안함을 좇아가고 있는 셈 입니다. 우리 스스로 정의를 내리지 않았을 뿐, 우리 모두는 각각 그 마음 속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를 추구하고 좇아가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은 무엇을 좇아가고 계십니까?
지난 한 주 교회 사무실에서 설교도 준비하고 교회 일하며 틈날 때 책을 한 권 읽었는데요. 너무 인상깊게 봤어요. 강구정이란 사람이 쓴 ‘나는 외과의사다’란 책이었어요. 최신작은 아니고요. 이 책이 지난 2003년도에 나왔으니까 무려 17년이나 된 책입니다. 제가 인상깊게 읽은 대목은 이 강구정이란 사람이 ‘나는 어떻게 해서 외과의사가 되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분이 인턴 시절에 병원의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외과 가니까 교통사고로 응급실 들어온 환자 얼굴에서 피가 철철 흘리고 있어요. 그 얼굴을 꼬매야 합니다. 병동에 화상 입은 환자들이 얼마나 자주 오는지 일일이 처치해야 합니다. 일이 힘든 거죠. 그 밖에 내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방사선과 여러가지 과들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바쁘게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다가, 안과 수련의들을 보니까 늘 여유가 있어 보이는 거에요. “내가 왜 굳이 힘든 내과를 선택할 필요가 있나? 안과를 택하면 수련 기간 부담도 없고, 평생 응급 환자 안 봐도 되고, 수입도 괜찮고, 적절한 돈 벌어서 여유 있게 취미 생활 봉사 활동 할 수 있겠구나?’ 그럼 이 분이 안과 인턴을 마치고 바로 진로는 정했는가? 아닙니다. 그 후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2시간씩 자기 진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한 거에요.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했어요. 병원에서 일하는 인턴들도 얼마나 바쁩니까? 그래도 처음 기도 시작할 때 2주 동안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한 일주일 즈음 기도했는데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마음에 확신이 안 서는 거에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 같은 병원에 있는 외과 교수 한 분이 자기를 부르는 거에요. 무슨 과를 전공할지 물어봅니다. 그러자 이 강구정씨가 자기는 ‘내과’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 했어요. 그러자 교수가 ’외과’를 전공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자기가 보니까 신체가 좋고 외과 수련 기간 동안 잘해서, 외과 선택하면 잘 할 것 같다는 거에요. 교수님의 말을 듣고 나와서 그 뒤로 또 다시 3주간 하나님께 기도 했어요. 그 3주 뒤에 자신의 삶을 외과의사로 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사실 이분도 좀 더 편안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외과보다 편안한 과는 얼마든지 있었어요. 그런데 좀 더 편안한 과를 생각하고 기도하면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다시스’로 향한 ‘요나’가 생각하는 거에요. 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구나 하고 믿고 외과로 마음을 굳힙니다. 그러면서 외과에서 우리나라 제1세대 복강경 수술 외과 의사로 일하게 됩니다. 이 강구정 의사 선생님은 20대 때 마태복음 9장 35절 말씀을 보고 자기 인생의 모습을 결정했어요.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 말씀을 태도로 “그래. 예수처럼 사람들을 회당에서 가르치고 병약한 자들을 고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내 평생 동안 해야 할 대명제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다”하고 자기 삶의 방향을 정한 것이죠.
저는 이 책을 보면서 한 주간, 참 많이 반성하고 또 제 인생을 돌아봤어요. “그래 난 지금 무엇을 좇아가고 살아가고 있는가? 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저의 기도 자세를 바뀌었어요. 기도하는 제 마음의 자세가 바뀌었어요. 책 제목은 “나는 외과의사다”인데 책을 다 보고 나니까 숨은 제목이 제게 들어오더라고요. “나는 주님을 따르는 외과의사다” 너무 멋진 인생 아닙니까? 만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가 책을 썼다면 그가 쓴 책의 제목은 “나는 어부다” 였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주님을 따르는 어부다” 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들의 인생을 책으로 쓴다면 그 책의 제목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 책 제목에 반드시 “예수를 따르는”이란 표현이 들어가기를 축복합니다.
이야기 하나만 더 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한국 연세대의 교수이셨던 분 중에 ‘김형석’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철학과 교수이신데요. 1920년생이십니다.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몇이세요? 올해로 100세 입니다. 생일이 4월 23일이라서 지난달 23일에 만 100세를 꽉 채웠어요. 이 분이 쓰신 책이 있는데, 정말 이 분만이 쓸 수 있는 책 제목 입니다. 책 제목이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이에요. 제가 이 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일’과 ‘행복’에 대한 정의였어요. ‘과연 인생을 백년이나 산 사람, 그것도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고, 인생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연구해온 철학과 교수는 어떻게 일과 행복을 정의했을까?’ 그게 제 궁금증이었거든요? 책을 보고 딱 두 문장이 제 가슴에 깊게 박힌 못처럼 남았어요. “돈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낮은 차원의 인생을 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이 귀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의 가치만큼 보람과 행복을 더하게 되어 있다.” 이 땅에서 백년을 산 노 교수가 전해 준 인생의 지혜였어요. 일과 행복의 관계. 돈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그 일의 가치를 위해서 일하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의 가치만큼 행복하고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급하게 해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일 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온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과 가장 깊은 보람은 바로 주님을 따라가는 삶 속에 있습니다.

결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이 되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나를 따라 오너라”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초청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 가십시오. 그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커다란 행복과 후회 없는 삶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십시오. 손에 들고 있는 그물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라가십시오. 어떤 대가를 치뤄야 할지라도 주님을 따라가십시오. 우리 모두가 예수 따르는 삶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