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8 사랑으로 책망하라 (고린도후서 7장 12-16절)

고린도 교회는 여러가지 문제로 병이 든 교회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울을 반대하고 그의 사도권과 가르침마저 부인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타지에서 선교 중에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한 통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명 ‘눈물의 편지’라고 이름 붙여진 편지였습니다. 오늘 12절에 바울은 자신이 그 편지를 보낸 이유는 진정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함으로써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단순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잘못과 죄를 지적하고 차갑고 매몰차게 정죄하기 위한 편지가 아니라, 사랑과 애정 그리고 기대와 소망의 기도가 담긴 편지였다고 말합니다.
지나온 어린시절을 돌아 보면, 어머니께서 매를 드시고 종아리를 때리시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천방지축 아들은 매로 인한 물리적 고통으로 ‘어머니께서 나를 미워하시나보다?’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어머니께서 드신 그날의 매는 자신을 미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매를 맞을 때는 무척이나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러한 어머니의 훈육으로 인해 자신이 나쁜 길로 어긋나가지 않을 수 있었으며, 올바른 길로 자랄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시간이 더 흐른 후 자기 자신이 부모가 되어 아이를 훈계할 즈음 되면 매를 드시던 그 어머니의 사랑을 더 확실하게 깨닫고 또 다시 눈물을 훔치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쓴 편지가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훈계하기 위해 손에 든 사랑의 매처럼 사용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고후 7: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권면의 말씀과 충고의 내용이 적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글의 단어 하나 하나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을 진심으로 사랑해 준 목회자 바울의 마음을 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꾸만 죄의 길로 어긋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편지를 적어 내려갔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교회에서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을 보면 그 사람에게 실수를 깨닫게 해주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경우들을 종종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말을 꺼내기가 염려도 됩니다. “내가 가서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줘야 하나? 아니야. 괜히 내가 나섰다가는 관계만 더 나빠질거야. 그렇다고 가만히 두고 볼 수도 없고… 참 답답하네…” 바울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때로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바울이 쓴 편지는 책망의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더욱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평사이 울이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바울의 책망도 자신들을 향한 풍성한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은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한 마디로 기쁨이었습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후 7: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다시 돌아왔음에 무척 기뻐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니 바울 뿐만 아니라 바울의 편지를 고린도 교회에 전해준 디도 역시 기뻐했습니다. 사실 디도 역시 얼마나 걱정이 많았겠습니까? 안 그래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가 좋지 않은데, 이 책망의 편지를 전해주었다가 자신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얼마든지 고린도 교인들이 편지를 보고 차갑고 매몰차게 돌아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염려와는 다르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도 바울을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하는 모습을 보며 디도 역시 마음에 큰 감동과 기쁨을 받았던 것이죠. 웃음은 옆 사람에게 전염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이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인해 기뻐하는 디도의 모습을 보며, 자기 자신도 함께 더 크게 기뻐 했습니다. 16절도 바울은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고후 7:16)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라는 표현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너희의 모든 것에 대해 신뢰를 하는 고로…”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 앞에 진실하게 살아가려고 하는지 신뢰하며 기뻐하고 이는 것입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가 완벽한 교회이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그래서 이들을 신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서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의 태도를 유지하려는 의지와 그러한 삶을 살려고 하는 실천적인 열매를 보았기 때문 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통해 그의 권면을 따라 자신들의 불완전한 모습을 인정하며, 죄를 회개하는 모습이 바울의 감동을 감동케 하고 또한 기쁘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같은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편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해야 할 삶의 모습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런 것들을 알고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바울의 편지를 통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돌아온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우리 마음을 다시 드린다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15장에서는 아버지가 집을 나갔던 탕자가 돌아오자 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열고 기뻐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쁨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바울처럼 풍성한 사랑을 담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십시오. 또한 우리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주님께 큰 기쁨을 돌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