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어느 날 고대 그리스의 유명 조각가 ‘페이디아스’는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재건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작업하는 이 신전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조각의 전면 밖에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페이디아스는 무더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이 거대한 조각의 뒷면을 공들여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무도 볼 수 없는 구석 구석까지 찾아가 몇 시간 동안 힘들게 일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그의 조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이 신전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신전의 앞면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스승님께서 작업하시는 곳은 아무도 볼 수 없는 곳 입니다. 왜 아무도 볼 수 없는 곳까지 굳이 열의를 다해 작업하시는 것입니까?” 어린 조수의 물음에 대하여 페이디아스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네 방금 아무도 볼 수 없다고 했나? 자네는 틀렸다네. 하늘의 신이 보고 계시다네. 그리고 자네와 내가 알지 않는가?” 페이디아스는 신 앞에서도 당당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 역시 이와 같이 남이 보든 안 보든 성실하게 사역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고후 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자신이 어떤 자세로 사역해 왔는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정말 양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교회와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섬김을 잘 아시기에 인정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11절에 보니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울은 장차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그의 행위대로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악한 일을 저지른 자는 심판을 받고, 선을 행한 자는 상을 받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죽음 이후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통해 그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양심의 거리낌 없이 서기 위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기 위해 진실되고 성실하게 맡은 바 일을 감당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열심이 넘치는 바울의 열정을 보고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며 13절에서 기록한 것과 같이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그처럼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열심히 살아간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위한 헌신이었음을 고백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고후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사람들이 볼 때는 복음을 위해서 젊음, 건강, 부, 명예, 지위 그 모든 것을 버린 바울이 미쳐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삶이 그의 원수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미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온전한 정신 즉 바른 정신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것임을 강조 합니다.
무엇이 이처럼 남들에게 복음에 미쳤다, 예수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선교를 하도록 만든 것일까요? 바울이 14절에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여기서 ‘강권하다’는 말은 ‘사로잡아 이끌고 가다’는 뜻과 ‘붙들고 가다’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미쳐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예수님의 사랑이 자신을 붙들고 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사로잡아 이끌고 갔기 때문에 그처럼 살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교회를 향한 바울이 가진 사랑의 출처는 바로 죄인 된 우리들을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음까지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죠.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살아났음을 고백합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자신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지 말고, 사망 권세에게 자신을 건져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라고 권면 합니다 “(고후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를 받아 구원 얻은 사람들은 삶의 목적도 달라야 할 것입니다. 이전에 구원 받지 않았을 때처럼 옛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육신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육신에 따라 사는 것을 거절하며 복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이전에는 세상적 가치관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예수를 육신을 따라 인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배척하지 않고 그를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17절 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사용 주기가 짧아져서 평균 2-3년 쓰면 핸드폰을 바꾼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기존에 사용하던 폰들 아직 쓸만 하거든요. 그래서 중고폰을 산 상인들이 고장 난 부품을 고쳐서 ‘중고’(Refurbished)로 다시 판매 합니다. 그런데 그거 보면 새 것처럼 보이는 게 있어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이란 고장난 폰을 고쳐서 새것처럼 만드는 차원이 아닙니다.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은 “새로운 창조”란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다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가 겪는 거듭남의 변화란 것은 기존의 존재가 아니라 전혀 색다른 존재로 새롭게 창조 되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는 자기 자신 밖에 모르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로 새창조를 입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새로운 피조물들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통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전에 육신대로 살아가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목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 된 삶을 살아가며 복음을 위해 우리의 삶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며,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득 안고 복된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